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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의 인연으로 함께한 대전 '봉오촌' 우리밀 모임 2

글쓴이 : 우리밀본부 날짜 : 2014-02-24 (월) 20:32 조회 :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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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촌넓은 방에 자리잡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분들을 기다릴 때 봉오촌에서 만든 우리밀 광고지를 보며 의견이 나왔다.
우리밀과 수입밀에 대한 비교에서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는 수입밀은 봄밀이어서 농약을 많이 쓴다는 문구에 대한 것이었다. 수입밀도 가을 파종 비중이 더 많고, 농약사용에 대한 공개자료가 없어서 단정적 표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밀 음식점에서 쓰도록 자료나 홍보물을 공통적으로 만들어서 함께 쓰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고 그거 참 좋다고 한번 같이 만들어보자고 동의했다.
곧 이어 천안밀영농조합 이종민대표가 도착했고, 우리밀식품 진승영전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우리밀농협의 김회진팀장이 왔다. 다음은 서로 인사를 나눴던 내용이다.
 
김포들깨수제비 최제호대표:
들깨수제비를 김포에서 시작한지는 7년 전쯤이다. 그러다 우리밀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서라기 보다는 다른 가게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 우리밀로 바꾼 게 4-5년쯤 됐다. 우리밀로 바꿔서 운영하는 게 식당쪽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작업이지만 비교적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밀본부의 홈페이지 들어가서 전국 우리밀하는 곳을 살펴봤다. 종류가 다양하단 걸 알았다. 우리밀 식당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류하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참조은밀협동조합 신정애 대표:
김제에서 온 우리밀생산자이다. 밀에 관심을 갖고 농사지은지 오래됐는데 밀자급률이 낮아서 안타깝다. 겨울이면 너른 들판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라도 밀농사를 지어야겠단 생각으로 시작했다. 우리밀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부안슬지네찐빵 김갑철 대표:
찐빵을 2000년부터 시작했다. 처음 찐빵을 시작할 때는 수입밀과 우리밀의 가격차가 너무 컸다. 그러다 그 차이가 좁혀졌던 2007년부터 우리밀로 바꿨다. 우리밀과 우리것을 찾는 사람이 많았고 우리밀을 시작하는데 자극이 됐다. 2009년 신지식인으로 인증도 받았고 6시내고향 프로그램에도 3회 출연하는 등 비교적 대중매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년 찐빵카페를 만들어서 운영중이고 찐빵체험도 계획하고 있다. 부안은 6만인구인데 그 인구로도 장사가 잘됐다. 현재는 비슷한 가게들이 너무 많아져서 쉽지가 않다. 전국 판매망을 넓히려고 2년전부터 SNS에 접촉하고 있다. 우리밀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밀가루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조은밀협동조합 김현중총무이사:
김제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김제는 2모작으로 쌀과 보리를 많이 했다. 밀은 소득이 적어서 농민운동하는 사람같이 의식있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농사지었다. 올해 10년만에 나도 다시 밀농사를 짓는다. 현재 협동조합에서 직영으로 방배동에 동우라는 짜장면집을 운영하고 있다. 생지사업까지 계획중이다. 냉동면을 지역으로 보내주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방법이다. 면에 좋은 백중밀을 올해 400톤 생산할 계획이다.
 
봉오촌칼국수 김완수 대표:
2000년부터 우리밀가게를 시작했다. 이름이 좋아서 시작했다. 가게 운영한지 3년쯤 됐을 때 블러그에 올려진 글을 보고 음식을 배우러 온 사람이 2명 있었다. 20135월 대전에서 제1회 칼국수축제를 했다. 대전은 칼국수집이 많아서 칼국수지도도 있다. 올해 대전칼국수축제때는 우리밀 칼국수의 인지도를 높이고 우리밀칼국수코너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줬으면 좋겠다. 올해 5월경에 4일 정도 칼국수축제를 할 것이다.우리밀에 대한 정보공유를 해야한다. 우리밀하는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다.
(작년 대전 칼국수축제 때 우리밀칼국수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축제에 참가하는 수입밀칼국수음식점들이 우리밀이 참가하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밀은 못나갔다-천안 이종민대표 대답해줌)
 
우리밀통상 김동완대표:
92년부터 우리밀에서 일해왔다. 20년이 넘는 과정을 겪다보니 아픔이 많다. 처음 가농실무자로 광주지역본부에서 일했다. 95년 인천지역본부가 창립할 때 실무자로 일하다 지역단위사업에서 개인사업으로 전환되면서 97년부터 개인사업자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리밀을 수매하고 직접 또는 외주로 제분하고 제과제빵 생산에 유통까지 계획중이다.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했고 여러 가지 우리밀 제품뿐 아니라 네모당면을 생산하는데 이 상품이 우리밀이 어려운 시기에 부딪혔을 때 숨통을 틔워줬던 효자상품이다. 현재 아산에 제분, 포장, 제빵공장을 건립중이다. 180kg이 최고 생산량인데 인천, 아산, 천안 학교급식에 겨우 공급할 양이다. 우리밀 앞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바쁜 사람이 많았다. 우리밀은 깨끗하고 순수하고 건강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아직 아토피가 있다. 처음 우리밀 유통을 시작하면서 우리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아빠의 마음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양심적으로 만든다.
 
천안밀영농조합 이종민대표:
천안호두과자명품화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200811월 중순쯤 서울에서 개최되는 집회에 참석하려고 가는 길에 평택인근 차안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러면서 차창 밖으로 겨울들판을 봤더니 그 너른 평택평야가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저곳에 밀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를 돌렸다. 천안을 국산밀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011년부터 천안시의 농업 본예산에 포함된 1억을 지원받고 있고 일반농가 기반조성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천안시에서도 호두과자는 우리밀로 만들어야 납품된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는 칼국수집, 중국집에 밀가루 제공하고 있다. 밀가루의 적당한 성질에 대해 파악하고 적절한 요리법을 찾기 위해 어른들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실험하고 테스트하며 찾아냈다. 국산밀을 가공하는 방법을 찾아내서 공개하고 함께 나누자. 요즘은 빵만드는 사람들과 연결돼서 천안밀을 공급하고 있다. 천안은 금강밀을 주로 심고 있다. 농진청식량과학원과 3년차 비교실험사업중이다. 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진지하고 열정적 기운이 감도는 상견례를 마치고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우리밀로 제품을 만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과 경험이 중심을 이뤘다.
화기애애했으나 날카로운 지적도 오갔다.
 
우리밀의 찰기부족을 메우기 위해 아직 글루텐을 소량 쓰고 있는 분에 대해 다른 분은 말했다.
글루텐은 수입밀 응축덩어리다. 글루텐을 쓰면서 우리밀100%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밀대학을 만들어서 우리밀에 종사하는 사람이 강사로 나올 수도 있고 외부강사를 초빙할 수도 있는 방법으로 재배, 제분, 가공, 유통에 대한 우리밀 교육을 실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봉오촌의 우리밀 음식이 들어왔고 모두 우리밀 발전을 소망하며 함께 잔을 들었다.
 
처음 이뤄진 우리밀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분야가 가지각색이었다.
생산자, 유통사업자, 칼국수, 호두과자, 과자, 밀가루...제각각이되 공통적인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12일 일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매달 만나는 것은 힘들테니 3개월이 어떠냐는 질문에 당분간은 매달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다음 모임은 2개월 뒤, 수요일에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밀 생산지나 우리밀 가공공장을 함께 가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일정과 장소에 대한 내용은 우리밀본부에 일임했다.
 
다음 모임은 416, 셋째 수요일에 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4시부터 시작된 우리밀 첫 모임은 9시가 다돼서 끝났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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